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서 사건 (문단 편집) == 평가 및 영향 == 원래 세디크 족에 대한 총독부 통치는 "효율적"이라 평가받아오고 있었기 때문에 항쟁은 충격을 줬다. 심지어 당시 일본 내에서도 이 사건에 대한 비판이 있었을 정도였다. 대만 총독부는 이후 원주민에 대한 정책을 [[3.1운동]] 이후 조선에서 그랬듯 비교적 덜 강경하게 바꾸고 생번 같은 멸칭도 고사족(高砂族)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. 물론 친일 교육 등도 강화되었다(...) 대만에서도 잊혀지던 이 일은 2011년 [[오우삼]]이 제작한 홍콩자본 합작의 장장 276분의 대만 영화인 [[https://movie.naver.com/movie/bi/mi/basic.nhn?code=86966|세디크 발레]](Seediq Bale)에서 다뤄졌다. 국내 개봉명은 '워리어스 레인보우'[* 한국에서는 무려 4시간 36분이라는 상영시간으로 인해서 너무 긴 나머지 [[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]]처럼 파트를 나눠서 개봉했다.]. 이 영화를 두고 일본 극우들은 중국이 제작한 반일영화라고 악을 썼지만 앞서 밝혔듯이 이 영화는 감독이 [[홍콩인]]일 뿐 대만이 제작한 영화다. 일본의 [[마토메]]사이트들이 이 영화에 비판적인 대만인의 반응[* 정작 그 비판이라는 것도 지나친 민족주의 감성을 비판한 것이지 절대 [[일본 제국주의]]를 옹호한 것이 아니다.] 입맛대로 골라서 친일적인 대만에서는 실패작 취급받는 반일영화로 날조하고 있지만 현실은 대만에서 흥행도 상당히 성공하고 대만 [[금마장]] 영화제를 휩쓸었으며 베니스 영화제나 토론토 영화제 등 메이저한 영화제들에서도 상영되었다. 다만 사람에 따라서 칼 한자루로 총으로 무장한 일본군 수십명을 베어버리고 소년 하나가 기관총을 람보마냥 난사하는건 어이 없을 수도 있다. 영화는 긴 상영시간으로 인해서 2011년 9월 9일과 9월 30일에 두개의 파트로 나뉘어서 개봉했는데[* 한국과 일본에서는 2014년 2월 20일과 7월 9일에 개봉해였다.] 영화의 1부인 항전의 시작은 도입부에서 보여지는 1895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타이완 침략에서부터 시작하여 약 35년이 경과한후 1930년 10월 27일에 벌어진 우서 지역 민간인 학살사건까지를 다루었고 클라이맥스 부분에 학교에서 벌어진 민간인들의 시신을 보여주는 것으로 영화가 끝난다. 그 뒤에 개봉된 영화의 2부인 최후의 결전에서는 학살사건이 끝나고나서 여러 부족들을 하나로 규합시켜서 본격적인 봉기를 시작한 11월 초부터 12월 중순까지 벌어진 반란의 진압과정에서 벌어진 여러차례의 전투 및 세딕크 족의 족장인 모나 루다오의 장렬한 죽음까지 다루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